아버지는 하나인데 형제, 자매들이 느끼는 아버지는 다 다른 모습이네요.
어느 날, 언니와 아버지에 관해 이야기 나누다 놀랐어요.
언니는 첫째 아이고 아버지와 함께 여기 저기 친척 집을 다니기도 하고 누구나가 다 아는 존재였죠. 성격도 활발하고 일도 잘 하고.. 다정하고 듬직한 아버지 모습을 많이 기억하는 게 신기했어요. 노래를 좋아하고 잘 웃는 아버지로 기억하더군요. 오빠도 친척들이 다 알았죠. 여동생은 막내라고 무조건 예뻐하시던 모습을 기억해요. 동네에서도 아버진 좋은 사람이었지만, 난 아닌데.. 어른이 된 후에는 동네 할머니들이 날 보면 "니가 ㅇ ㅇ이냐?" 라며 언니 이름을 대던 것이 생각나요. 동네 사람들도 날 잘 몰랐죠. 항상 조용히 지내는 아이였기에...
엄마나 언니 기억에 제일 안타까웠던 모습이 내가 혼나는 장면이었대요. 밥상머리에서 고집부린다며 혼난 기억은 나는데.. 말을 거의 안 했으니까, 소통이 잘 안 되어서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었을테지만요. 회초리를 맞은 기억은 나지 않는데.. 무의식 저 편으로 감추어 둔 걸까요?
엄마나 언니의 기억에 의하면, 나는 아무리 혼을 내도 잘못했다고 빌거나 도망치지 않고 고집스럽게 버티며 매를 맞았대요. 매 맞을 짓을 했나? 착한 아이로 산 것 같은데.. 어른들이 항상 옳은 건 아니잖아요. 내 자존심을 버리면서 내 잘못이 아닌 일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했나요? 언니는 언니라서, 오빠는 4 대 독자라서, 동생은 여섯 살이나 어리니까 내가 당해야 하나요? 아니요. 난 싸워야 했어요. 그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텨야 했다구요. 말을 안하고 수동공격적 성격으로라도. 난 미움 받는 아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제제를 만나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때릴 필요는 없잖아요. 왜 그 때 날 때리셨어요? 당신을 많이 닮아서 그런 건 아닌가요?
나중에 아이를 키우다가 발견한 사실인데, 나처럼 고집스레 행동하는 아이를 보면 화가 많이 나더라구요.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을 직면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나는 왜 이럴까?' 자괴감이 들었지요.
아~ 그러네요. 기억이 어렴풋이 나요. 중학교 다닐 때, 난 공부하는 게 좋았어요.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던 선생님을 좋아해서 그 선생님이 운영하는 생물반에 들어가서 방학 때 활동을 하러 가야 했지요. 그런데 그 사실을 모르는 아버지는 밭에 가서 고추를 따야 한다고 했죠. 난 일하는 게 싫은 것이 아니었어요. 언제나 성실하게 일을 도왔잖아요. 동생도 돌보구요. 단지 선생님과 친구들과 시내에 발표하러 가는 날이었다구요. 사정을 말 했다면 다르게 행동 하셨으리란 걸 알지만, 난 그 당시 죄책감 때문에 입을 닫고 사는 아이였어요. 그래서 더 고집스레 보였을지도 모르죠.
" 난 아버지가 싫어요. 선생님이 우리 아버지였으면 좋겠어."
난 용기내어 말했다고 기억하는데, 모르겠어요. 실제 사건인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