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6. 13:10 비밀의 정원

이별

 

 새로운 직장에 적응을 마칠 무렵 남자친구 면회를 갔다.

 가녀린 코스모스가 흔들리며 피어 있던 동산, 쌀쌀했던 기억으로 보아 늦가을 즈음, 외출 가능한 시간이 짧아서, 근처 길을 걷다가 외딴 무덤 누런 잔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만남이 부담스럽다며 헤어지자는 친구에게 고개를 끄덕였던 나. 나는 애써 무덤덤해하며 널 잡지 않았다.

 홀로 있는 시간이 두려워 거리를 헤매었다. 토요일 오전 근무가 끝나면 어디론가 떠나야만 했다. 너를 생각하는 나로부터 도망쳐야 했기에.. 습관처럼 널 찾는 나. 나는 이런 내가 미웠다. 숨을수록 그럴수록 더 집요하게 날 뒤쫓는 너의 환영. 같은 꿈을 꾸고 마음이 잘 통하는, 이 세상 단 하나뿐인 너였기에.. 늘 편지하며 힘이 되는 친구였기에,..내게는 너무 소중한 첫사랑인데.. 차마 태우지 못한 편지를 읽으며 널 그리워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너와의 추억이 가득 찬 거리나 동아리 모임에도 갈 수 없었다. 널 지우려 애썼던 고통스런 시간이었다. 목이 콱 막혀오고 숨조차 쉴 수 없었지만.. 친구가 원한다면 보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기에.. 나는 너를 잡지 않았다

 그 해 겨울! 폭풍우 몰아치던 동해바다가 내게 건넨 말:

  거친 파도처럼 몰아치는 슬픔이 밀려오면 몸을 맡긴 채 울어도 돼. 너무 이겨내려 애쓰지 마. 다 지나가 다 지나가 다 흘러가 다 흘러가

  다음 해 겨울, 광릉수목원에서 나무들이 건넨 말:

  엄동설한에도 우린 느리지만 깊은 숨을 쉰단다.’

초라해 보이고 흔들려도 여전히 나는 네 맘 깊이 뿌리 내리며 자라는 나무야. 항상 변함없이 여기 서 있어. 언제라도 찾아와 말을 건네렴. 어떤 계절이 널 찾아와도 괜찮아. 넌 너로 충분해. 너는 이 세상 단 하나뿐인 보석이야.' 

'들어봐. 눈이 내리고 찬비가 내리고 스산한 바람이 지나는 길 끝에서 따스한 봄날이 오는 소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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