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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21 플라타너스는 부쩍 자랐군.


 시골 학교가 많이 변했다. 단층 건물에 구멍이 송송 뚫린  나무바닥 교실이 사라지고, 괴담이 늘 떠돌던 재래식 화장실에는 자연학습장이 들어섰다. 몽당연필도 쓰레기장도 수돗가도 없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굳건히 서서 부쩍 자란 플라타너스만이 나를 반긴다.

 5 학년 때였나?
선생님의 편애문제로 우리반은 두 패로 갈렸었다. 내가 속한 그룹의 아이들은 점심을 먹으러 가끔씩 이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로 모였다. 나무 아래서는 남,여가 짝을 이루어 춤을 추는 음악수업이 진행되기도 했는데.. ㅎ ㅎ 수줍음이 많았던 우리는 나뭇가지를 주워 손 잡는 것을 대신했다. 나무 아래는 방울이 떨어져 있기도 했는데.. 그래서 우리는 이 나무를 '방울나무'라고 부르곤 했다. 방울을 돌리다가 놓으면 방울은 속도에 의해 다른 곳으로 날아갔지. ㅎ ㅎ 

 다시 패싸움 이야기로 돌아가자. 직접 몸을 부딪히며 싸우지는 않았으나 우리반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고, 남자 담임 선생님은 어느 날인가 무엇 때문인지 잔뜩 화난 얼굴로 우리에게 훈계를 하셨다." 이제부터 움직이지 말고 반성하고 있어."  나는 고집이 센 아이였다. 좋게 표현하면,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 생각에 잘못은 선생님이 먼저 하신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겁도 없이 교실 뒤쪽의 사물함까지 걸어가서 그곳에 걸터앉았다. 선생님은 나를 앞으로 나오라고 하시더니 손을 내밀게 해서 손바닥을 때리기 시작했다. 단 한 마디의 질문도 없었지. 내 행동의 이유도 묻지 안았고.. 회초리가 부러져서야 매질은 멈추었다. 토끼처럼 놀란 아이들의 눈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평소에 말이 거의 없고 너무 조용해서 존재감이 별로 없는 아이였다. 아마 선생님도 무척 놀랐을 것이다. 짝이 말을 붙이는 때는 주로 시험을 본 후로 기억된다. 점수를 얼마나 받았는지 궁금했나? 경쟁자로 생각했었나? 아무튼, 붉은 매자국이 부어오를 정도로 매를 맞으면서도 나는 움찔거리거나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잘못했다고 비는 짓도 물론 하지 않았다.



 
  내가 그 시절에 눈물을 흘리며 읽던 책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였다. 제제는 아버지로부터 온갖 매질을 당한다. 왜 때리는지 이유조차 알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당하는 제제에게서 나는 공감을 느꼈던 것 같다. 초등학교를 생각하면 이 회초리 사건이 떠오르는 것으로 보아 내게 큰 충격을 준 경험이었음이 틀림없다. 부모님께 꾸중을 들은 일이 거의 없던 나였으니.. 어른이라고 아이에게 함부로 화풀이를 해서는 안 된다. 아이를 힘으로 제압하거나 권위로 누르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춘기가 빠른 요즘 아이들을 사랑이라는?  이름의 매로 다스리는 것은 더더욱 위험하다.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며 대화로 풀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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