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성벽 앞 풀숲에서 박주가리 덩굴과 만났다. 털북숭이 꽃이 인상적이다.
추석 때 시골에서 도로변에 핀 이 식물을 보았는데, 먼지를 가득 뒤집어 쓴 잎과 꽃이 군락을 이뤄 씩씩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 때는 꽃이 그렇게 예쁘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성벽에서 만난 박주가리 꽃은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렇다. 어떤 장소에 자리를 잡고 사느냐에 따라서, 같은 식물도 다른 시각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그 가치도 달라진다. 자연은 사계절 살아 숨쉬며 우리 사는 공간을 멋지게 디자인한다. 들풀을 좋아하는 나는 이런 생각도 한다. 만약에 내가 나중에 나중에 내 집을 짓게 된다면, 정원의 절반 정도를 자유로이 풀들이 자라게 놔 둘 생각이다. 최근에 성벽을 걸으며 아쉬웠던 것 하나는 성곽 주변 풀들이 다 베어진 것이었다. 성벽과 금강아지풀이 참 보기 좋았는데... 풀들이 가을이 익어 갈수록 변해가는 모습도 보기 좋은데..
하찮게 보이는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가 설 자리를 빼앗지 말자. 자연으로 자유롭게 숨 쉴 자리를 허용해주자. 사람이 살 집을 짓는다고 산이 깍이고 논이 메워지면서 늘어나는 것은 포장된 콘크리트의 딱딱하고 수용할 줄 모르는 길들 뿐이다. 비도 햇살도 스며들지 못하는 그런 길!
내 어린시절 추억이 담긴 논과 밭의 길들이 정비되었다. 어떤 곳은 지형이 바뀌기도 했다. 노래하며 뛰어놀고 나무를 하던 곳인데..하얀 메밀꽃과 고구마를 심던 곳인데..우리 밭 주변 동산은 아예 사라지고 공장과 건물이 들어선 것을 보았다. 언니는 할머니와 함께 나물을 캤던 곳이라며 옛날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 구불구불 논과 밭길에 담긴 내 이야기들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슬펐다.
도시의 콘크리트 바닥 틈새에서 자라는 풀들을 보는 내 가슴이 아프다. 그들이 설 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곧 우리의 숨통을 스스로 죄는 것과도 같으니까.. 도시의 열섬 현상을 보라. 흙이, 초록의 녹지가 사라진 결과로 고통스런 여름을 보내게 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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